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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企 4곳 1500억 손실…금감원 내달 '키코 안건' 심의
작성자 운영자 등록일 2019-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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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수백여 수출 중소기업이 3조원대 손실을 보며 줄도산을 초래했던 환율 파생 상품인 키코(KIKO)가 10년여 만에 다시 금융 당국의 심판대에 오른다. 당시 1500억원대 손해를 입은 4개 기업이 금융감독당국에 KEB하나·신한은행 등 6개 은행을 상대로 한 금융 분쟁 조정을 신청해서다. 당국도 은행의 과실이 크다고 사실상 결론 내린 상황이어서 실제 배상액과 그 후폭풍에 관심이 쏠린다.

 

윤석헌(오른쪽) 금융감독원장이 지난달 2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금감원 본원에서 열린 보이스피싱 방지 프로그램 공개 행사에서 이상제 금강원 부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4일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다음달 금감원 산하 금융분쟁조정위원회(이하 분조위)에 키코 안건을 상정해 심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금감원은 앞서 지난해 7월 은행 6곳과 키코 계약을 맺었다가 대규모 손실을 본 중소기업 4개 회사가 민원을 접수해 6개월간 기업체 및 은행 조사를 마치고 현재 분쟁 조정 결정문 작성 등 막바지 작업을 벌이고 있다.

키코는 금융위기 이전 은행이 수출 대금을 달러로 받는 중소기업 등에 환율 하락(원화 가치 상승)에 따른 손실 위험을 방어(헤지)할 수 있다며 대거 판매한 금융 파생 상품이다. 예를 들어 상품을 수출해 100만 달러를 받은 기업은 환율이 1달러당 1000원에서 900원으로 내려가면 한국 돈으로 환산한 수입이 10억원에서 9억원으로 1억원 줄어든다.

키코 계약은 이처럼 환율이 내려가면 기업이, 반대로 올라가면 은행이 이익을 보는 구조다. 기업은 환율이 어떻게 움직이든 일정 범위 안에서는 미리 정한 환율로 은행에 달러를 팔 수 있다. 예컨대 환율이 1달러당 900~950원 사이에서만 움직인다면 은행이 1달러당 950원에 기업으로부터 달러를 사준다. 그러나 금융위기 당시 수출 기업이 대규모 손실을 본 것은 키코 계약상 환율이 일정 금액을 넘으면 거꾸로 은행이 미리 정한 환율로 기업의 달러를 훨씬 유리한 조건에서 싸게 살 수 있는 권리를 가졌고 실제 환율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금감원에 민원을 신청한 기업 4개 중 2개사는 은행 1곳과만 키코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다른 2개사는 무려 은행 3곳, 5곳과 각각 계약을 체결했다. 이로 인한 손해액은 4개사를 합쳐 1500억원에 이른다.

◇금감원 “은행, 적합성 원칙·설명 의무 어겨”

키코는 대법원이 이미 지난 2013년 9월 해당 소송 건을 다루며 “불공정 거래 행위가 아니”라고 판결했다. 당시 피해 기업이 주장하던대로 ‘사기 상품’은 아니라는 얘기다.

금감원이 초점을 맞춘 것은 대법원이 이미 판단을 내린 키코 계약의 불공정성이 아닌 ‘불완전 판매’ 쪽이다. 그래서 분쟁 조정 대상도 당시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회사로만 국한했다. 구체적으로 당시 은행이 고객을 알고 상품을 권유하라는 금융상품의 ‘적합성 원칙’과 상품의 손실 위험을 고객에게 상세히 알려야 하는 ‘설명 의무’를 위배했다고 금감원은 보고 있다.

금감원 한 관계자는 “키코는 환율 변동 위험을 회피하는 것뿐 아니라 투기적 성격까지 가진 고위험 상품”이라며 “은행이 기업의 수출액을 훨씬 넘는 규모로 키코 계약을 맺도록 유도한 것은 기업의 경영 상황에 비춰 적정한 상품을 추천해야 하는 적합성의 원칙을 어긴 것인 만큼 은행도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앞서 지난 2010년에도 키코 판매 과정에서 적합성 심사를 잘못했다는 이유 등으로 은행 9곳의 임직원 72명을 무더기 징계한 바 있다. 다만 당시에는 은행의 ‘건전성’ 측면에만 초점을 맞추고 법원 소송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불완전 판매 여부 등에는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키코는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는 현 윤석헌 금감원장이 원점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피해 구제에 적극적으로 돌아섰다.

실제 기업이 받을 배상액은 금감원 분조위 논의를 거쳐 결정될 전망이다. 분조위가 안건 심의 후 적정 배상 규모를 포함한 중재안을 마련해 기업과 은행이 합의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4개사는 모두 2008년 7월 이전에 은행과 키코 계약을 체결해 금감원에 민원을 신청한 작년 7월부로 민법상의 손해액 청구권 소멸 시효인 10년이 이미 지났다. 그러나 금감원은 분조위의 조정 권고는 법상 소멸 시효와는 무관하게 효력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소멸시효가 완성된 만큼 키코 사태가 다시 기업과 은행 간 소송전으로 번질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다만 금감원 분조위의 배상액 지급 결정을 은행이 받아들일 경우 키코 계약을 맺고 소송에 참여한 적 없는 회사를 중심으로 금감원에 추가 분쟁 조정 신청이 밀려들 수 있다. 사태가 확산할 수 있는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규정상 민원이 들어오면 조사를 안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키코를 판매했던 한 은행 관계자는 “분조위가 최종 권고안을 확정하면 그걸 보고 입장을 정할 것”이라고 했다.

박종오 (pjo22@edaily.co.kr)